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 청문회가 이어지면서 '괴벨스'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의 말이 많이 인용되고 있는데 괴벨스가 누구인지 모르는 한 사람으로, 그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괴벨스'가 될 것이라 비유했던 정동영 의원의 말은 대단한 염려가 묻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
괴벨스는 독일 나치당의 최고 선전가이자, 대중계몽선전국가부의 장관이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극렬한 반유대주의자로 알려진다.
1924년 나치당에 가입하고 1926년에는 베를린의 대관구지휘가로 임명된다. 이 당시 선전, 선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1933년 나치 집권 이후에는 반유대주의와 기독교에 대한 공격 등을 위해 뉴스 매체, 미술, 정보를 장악하고 통제했다.
1943년 히틀러에게 '총력전을 시작할 조치'를 도입하도록 압박하였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전쟁에 필수적이지 않은 사업 폐쇄
- 여성들의 징집
- 징집 면제 직업을 가진 남성들의 징집 및 국방군 입대
히틀러는 1944년 총력전을 위한 제국 전권 대사로 괴벨스를 임명한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가 4월 30일 자살하자, 괴벨스는 히틀러의 유언대로 독일 총리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겨우 하루가 지난 다음날, 지하 벙커에서 의붓아들을 제외한 자녀 1남 5녀를 모두 살해하고 그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와 동반 자살하였다.
괴벨스의 성장과 출세 과정
괴벨스는 1897년 10월 29일 프리츠 괴벨스와 카타리나 오덴하우젠 사이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누나 1명과 여동생 1명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고, 괴벨스 또한 어려서부터 병약한 신체를 가졌다. 4세에는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오른쪽 다리에 장애를 갖게 된다.
어려서부터 이로 인한 놀림을 받다보니 성격은 내성적이 되었고 스스로를 열등한 인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괴벨스는 콤플렉스를 뛰어난 머리로 커버하며 학창 시절 내내 월등한 성적으로 인정받는다.
16세 되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조국을 위해 전선에 참가하는 것에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준비하였으나, 그저 대체 복무만을 하게 되었다. 1917년 6월 대학 시절에는 행정병으로 소집되어 잠시 근무하였으나 그것조차 그의 장애와 꾀죄죄한 외모 탓에 집으로 돌려보내지게 된다.
이 또한 그에게는 사회를 향한 큰 불만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고, 그 이면에는 돈 많은 유대인에 대한 증오도 깔려 있었다.
피아노를 잘 다루고 화술과 매너가 좋았던 덕에 괴벨스 주위에는 여자가 늘 많았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여배우들과의 염문도 숱하게 많았다. 또한 호화생활을 이어가며 부정 부패를 일상처럼 살았다.
그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는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으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여 괴벨스나 히틀러를 대신해 외국 손님을 접대하고 다리를 놓을 정도로 일가견이 있었다. 나치당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괴벨스를 만날 만큼 나치당에 열성적이었으며 결혼 후 그녀의 출신 배경과 인맥, 영향력은 괴벨스의 출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괴벨스는 열등감의 어린 시절을 지나 열등감이 내재된 우월감으로 무장하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눈을 잃고 히틀러를 신봉하면서 점점 괴물이 되어갔던 것이다. 그는 히틀러와 함께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이며, 수천만 인류를 희생시킨 최악의 위험한 인물로 기억된다.
괴벨스의 명언, 망언
이를 명언이라 해야 하나? 좋은 영향으로 모두의 본보기가 된 말을 명언이라 한다. 괴벨스의 말에는 망언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 대중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
-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 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선전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예술이다.
- 선전가는 국민의 흔들리는 영혼을 이해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 선전은 창조와 생산적 상상력에 관련된 문제이다.
-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 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 정치란 불가능의 기적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 우리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아니면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서 긴장을 해소하고 유쾌함을 주는 오락 영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영화야말로 일급이 민족 교육 수단인 만큼, 모든 영화는 면밀히 구성되고 조직되어야 한다.
- 국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이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 태도로 삼아야 하지만, 모든 부분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능히 소화해 낼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청문회에서 언론인 선후배 정동영 의원과 이진숙 후보자
정동영 의원은 이진숙 후보자에게 선배로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걱정과 연민을 담은 듯 보였다. 사랑하는 후배였던 후보자에게 질의하는 정동영 의원의 표정에는 많은 감정이 오가는 듯했다.
정동영 의원은 괴벨스의 말을 인용하였다.
방송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방송이 우리 이념에 공모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다른 이념도 발언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든 피아노여야 한다. 연주는 정부가 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후배였고 현재는 후보자인 이진숙을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번 청문회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면서 안타깝고 속상한 장면이었다. 두 화면을 번갈아 보는 동안 정동영 의원은 전혀 미동이 없었다. 이진숙 후보와 뒷사람만 움직였을 뿐이다.
이진숙 후보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서민인 우리는 모른다. 관심도 없었다. 그저 바그다드 종군 기자의 초롱초롱하고 진실을 향한 날카로왔던 두 눈빛만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청문회에 나타난 그녀의 눈빛은 예전의 그 눈빛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때의 그 눈빛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그 사실을 본인만 모르는 것인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사이버 렉카 뜻. 바로 알고 세상을 그따위로는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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